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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상/서재

물고기

by 유다110 2016. 11. 13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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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고기는, 그러니까 우리가 고기 또는 생선이라 부르는 존재들은 본디 바다에서 살지 않았다. 뭍에 살면서 나무에 오르고 흙에서 나는 생물들을 잡아먹었다. 하루에 한 번 모래밭에서 일광욕을 하기도 했다. 몇 가지 감정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며 사상도 종교도 없다.


이들이 언제부터 물 속에 들어갔는지, 그 정확한 시기는 알려진 바가 없다. 다만 그들의 납작한 꼬리와 지느러미를 보건대 그 옛날 튼튼했던 팔과 다리가 종잇장처럼 변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단 것만 추측할 수 있다. 하지만 바다에 들어간 시기와 경로가 어찌되었든 그들이 딱히 원하던 바는 아니었음을 알아야한다. 우울한 눈빛과 권태로운 몸짓으로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음을 내비치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말을 할 수 있는 입이 없다. 


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바다 밖의 삶을 꿈꾼다. 알다시피 물고기와 관련된 전설은 절대 바다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. 인어공주(생선이 바다 위로 올라오는 이야기), 별주부전(거북이같은 게 바다 위로 올라오는 이야기) 등등 우리는 수많은 고기들이 물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조금씩이나마 익혀왔다. 이는 모두 그들을 가엾게 여긴 인간들의 덕택이다.


그러나 이야기의 힘은 매우 약하다. 차라리 `물고기 선언`이라도 만들어주었으면 좋으련만, 그건 또 재미가 없다며 인간들은 거절했다.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더 절망적으로 내려앉고 있다. 과거에는 물고기들을 불쌍한 처지를 아는 사람들이 있어 많은 실화들이 소개되었지만 지금은 극히 적은 사람들만이 이 사실을 알 뿐이다.



(사족)

사실 이를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을지도 모른다. 하지만 그들은 모종의 이유로 그들을 외면해 버린다. 그건 아마,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희며 부드럽고 착착 감기는 그 무엇 때문이리라. 물론 내가 바다에 관련된 이야기를 짓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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