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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래 묵은 책 냄새가 나는 그 방. 반지르르한 바닥, 낡은 소파가 있고 이상한 형광등이 매달린 그 방. 그러나 방이 비었다. 주인은 오래전에 떠났다. 그러나 나는 그곳에 누군가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. 최소한 무엇인가, 방이라도 살고 있으리라.
나는 그곳에 내 첫사랑이 살고 있기를 바란다. 그녀는 스물 다섯 해 전에 나를 떠났지만 이제는 돌아왔을지도 모른다. 황금빛 머리를 빗어내리면서 베틀노래를 부르고 있다면 좋겠다.
나는 그곳에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이 와 있기를 바란다. 그곳에서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망자라도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이다. 내가 문을 열면 그는 “안녕”이라고 생시처럼 한쪽 눈을 감았다 뜨며 인사를 해줄지도 모른다.
그들이 오지 못한다면 그곳에 어처구니라도 살아주었으면 좋겠다. 어처구니는 나와 몇 해 전에 어느 책에서 만났는데 그는 ‘상상보다 큰 물건, 사람’이라고 풀이되어 있었다. 나는 상상보다 큰 물건이나 사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어처구니가 그 방에 살아주었으면 적당할 것 같다. 그 방은 이제 나의 상상보다 충분히 크고 아름답고 오래되었으리라.
나는 거기서 첫사랑을 만나기를 바란다.
나는 거기서 죽어서도 책을 좋아하는 벗을 만나기를 바란다.
나는 그곳에서 어처구니를 만나고 싶다.
내 책장에서 눈높이 칸의 정중앙에 꽂혀있는 책이다.
가볍게 읽기 좋고, 그냥 읽어도 좋은 책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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